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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해 지기 위한 썰풀기 02.내가 망친 내 건강

by MIXBOY 2025.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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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처음 아프다는 것을 느낀 기억

 
나의 건강상태를 50대를 앞두고 개선해 보고자 하나 둘 생각들을 정리 중이다. 이 포스팅은 그 노력의 일부 이기도 하다.  건강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았던 내 생애 가장 처음 아팠다고 생각하는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는 기억은 45년 전으로 대략 1981년도 나는 네 살이고 치과에 누워 있다. 
 
엉엉 울면서 연신 엄마를 부르고 온갖 공포는 나를 감싸고 있으며 나의 상태는 꽤 좋지 못했던 듯하다.
통증에 대한 기억은 지금은 정확하게 없다. 다만 그 이후로 나는 치과라는 곳을 엄청나게 무서워하는 공포 속에 살았다. 
 
다섯 살에 치과에 갔던 이유는 이러하다. 
사업이 기울던 우리 집은 경상북도 구미였고, 집 주위의 풍경은 꽤나 예쁘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지만 어린 나이에 그 당시 시골동네 구멍가게에서 어묵 한 꼬치를 사주기 힘들었을 정도의 기억이 있다. 
1980년도 7월에 태어난 내 동생을 등에 업고, 나의 손을 잡고 울 엄마는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큰 길가 대로에 양차선 도로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 길을 건너던  그 순간 기억이 난다. 
“나도 혼자길을 잘 건널 수 있다는 것을 엄마한테 보여 줘야지” 
철없는 네 살은 뭐든지 자신이 하고 싶어 하고 어른스러워지고 싶어 하는 나이 아닐까. 
저 멀리서 버스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반대편을 보니 달려오는 차는 없었다. 
난 순간 엄마 손을 뿌리치고 갈 건너편으로 냅다 달렸다. 
우리 엄마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시간이 흘러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러하다. 
 
사업이 기운 집안에서 아이 둘을 낳고 아버지는 일터로 나갔을 때 시골 에서 할 수 있는 건 품삯을 받는 일을 하는 것인데, 그 당시 한 푼이라도 벌어 보려고 엄마는 태어난 지 한 살 된 동생을 포대기로 등에 업고 한 손은 나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도구를 들고 일터로 향하던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대로를 건너야 하는 시골 고속도로 비슷한 형태의 거리에서 뒤에 업힌 동생을 치켜 오리려고 내 손을 잠시 놓은 순간 갑자기 네 살 아들 넘이 큰 행길로 달려 나섰으니 울 엄마가 얼마나 황당하고 놀랬을까? 
 
하여간 정확한 오차 없이 버스 옆을 피해 씽~ 하고 달리던 오토바이에 나는 왼편을 그대로 부딪혀서 붕 떠서 
몇 미터까지 날아가 버렸다. 교통사고였다. 
 
그리고 나는 그 당시 어느 정도 아팠는지 기억보다는 내 온 입가에 피가 흐르고 난리 법석이 된 거리에서 엄마가 급하게 택시를 잡고 병원으로 향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 입원했고 치과에서 찢어진 턱을 꿰매던 기억이 난다. 
 

몸이 느끼는 통증의 어렴풋한 기억들  그리고 주위 사람들

 
 
이 치료 시에 나는 엄청 겁에 질려 울었고, 요즘 같은 시대가 아닌 서슬 퍼런 1980년대 시골 병원이라서 엄마를 찾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엄마를 밖으로 내보내고 나를 치료하기 위해 억지로 내 턱을 꿰매었다. 
물론 운이 좋아 얼굴 바깥이 아닌 입 안쪽으로 꿰매었는데, 미리 준비되어 있던 나의 영구치아 두 개를 빼내면서 
나는 아래 앞의 치아가 두 개가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다치거나 괴롭거나 부상당하거나 병들거나 하는 건강이 악화되는 상황의 내 기억에 남은 첫 경험의 순간들이다.  그 이후 부모님은 경제적인 면이나 시밀적인 면에서 또 나는 나대로 엄청 고생을 했을 테지만 회복하는 기간 동안의 정확한 기억은 없다. 아마 약도 먹고 그랬겠지만… 엄청난 통증과 심리적 충격등으로 
삶을 배운 고통의 한 페이지가 기억이 난다. 
 
돌아보면 네 살 때 나는 질병보다는 큰 부상인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온 첫 번째 경험이었다. 
그 이후 경찰 아저씨는 멋있고 정의로운 사람 소방관도 멋있는 사람 그러나 의사는 무서운 사람으로 인식을 하게 되었다. 
 
역시나 나의 건강은 누구도 망치지 않았다. 내가, 내 자신이 우선적으로 망치게 된 경우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탓을 하자면 오토바이 운전수와 시야를가린 버스운전사 등등 탓을 할 수 있겠지만 법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그들은 교통법상 아무런 과실이 없다. 
 
주사도 맞았고, 턱을 꿰매는 경험도 그랬고, 치료를 위해 너무 몸부림치는 나를 억지로라도 붙잡고 입안을 꿰매어야 했던 의사 선생님도 역시나 얼마나 스트레스였을까?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가뜩이나 돈이란 게 모자라던 시절 나는 교통사고를 당하며 부모님에게 하나의 짐을 커다랗게 무겁게 얻어 놓은 격이 되었다. 
 
역시. 나의 건강을 해친 것은 여기서의 기억으로는 내가 되어 버렸다. 물론 어린아이이니까 어른들이 잘 보살펴야 한다는 전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고, 철없이 혼자 길을 건너는 모습을 보여주고 뿌듯해하려고 엄마 손을 놓고 신호등도 없는 대로에서 냅다 달린 나의 과실이 가장 크다. 
 

내가 망친 나의 건강 

 
오늘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내 건강은 대부분 내가 내 자신이 망쳐왔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거나 내 의도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건강함을 잃는 사례도 있겠지만, 여기서 이야기하고픈 전제는 평균적으로 건강하게 태어난 사람들이 결국 그렇게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알게 되는 감사함을 알지 못한테 천년만년 건강한 상태로 지속될 거라는 생각으로 건강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참 많은 것 같다는 생각에서 이런 생각을 해 봤다.   
 
 
 
나의 건강 상태를 돌아보고 있다. 23년도 건강검진표를 지금에서야 다시 보니 생각보다 많은 지표들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모르고 지나쳐 버렸다. 내심 나에게 나의 몸에게 미안하다. 
현제로 돌아와서 25년도 5월 25일 일요일 오늘 오전에 내가 복용한 약은 세 가지이다. 
 
1. 공황장애 약 한 알    2. 혈압조절약 한 알    3. 비타민 C1000 mg 짜리 두 알. 
 
나이 만 47세를 바라보며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할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아직은 더 나아질 수 있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더 나은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리라 마음먹어 본다. 
 
다시 온갖 잘못된 나의 습관과 너무나도 맛난 것들이 넘쳐나는 유혹으로 나의 비만을 부추기겠지만 말이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나의 포스팅을 접하게 되고 호기심이든 심심해서이든 읽다가 공감이 되거나 한다면 그분 한분 한분들이 건강에 대해 생각해 보고 최대한 더 나은 건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생각들로 실행하시게 되길 바란다. 
 
재산이 엄청나면 뭐 하고, 엄청 잘생기면 뭐 하나? 아픈 상태로 오래 살아도 그것도 고통이다. 
걷기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통증이나 불편한 상황들을 마주해야 하는 건강을 잃은 상태 아니면 오늘내일하는 큰 질병에 걸려 생을 서서히 마감해야 하는 상황 정말 생각하기 싫다. 
 
나는 최대한건강해지고 싶다. 그 첫 한 발이 가장 어려우면서 꼭 해야만 하는 나의 나태함 내 내면의 수많은 나를 해치는 욕구들과 싸우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오늘 포스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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